윤제림

숲은 후대에 물려줄 가장 값진 유산
보성 주월산과 초암산이 품은 소통의 숲, 윤제림(允濟林)

윤제림(允濟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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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군 겸백면 수남리 주월산 일대의 숲은 잘 자란 아름드리 나무들로 풍성함을 자랑한다. 337ha 달하는 이 숲은 한평생을 온통 산과 나무에 바친 윤제 정상환의 손길로 만들어졌다. 이 산이 이제 부친의 뒤를 이은 아들에 의해 경영 숲의 모델로 다시 한번 비상을 준비하고 있는 보성군 겸백면 주월산 일대 윤제림(允濟林)이다.

"1,2,3차 산업 융합된 6차산업의 산림경영모델 보여주고 싶다"

부친의 뒤를 이어'윤제림'을 경영 하고 있는 정은조 회장 역시 '윤제림의 미래'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정 회장은 아버지가 일구던 265ha의 숲을 337ha 규모로 늘렸다.

"나무를 심어 수십 년 뒤에 벌목해서 원목을 팔아 돈 버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건 일순간 수입이 생길지 몰라도 다시 식목해서 40~50년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적으로 매우 비생산적인 일입니다.

이제 산림도 치유의 숲이나 힐링센터 같은 경영모델로 개발해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산 안에 1,2,3차 산업이 전부 융합된, 즉, 생산, 제조, 판매서비스까지 한꺼번에 하는 산림경영모델이 필요합니다.
그런 모델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새로운 꿈을 꾸다

정 회장은 어릴적 아버지의 조림 사업을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엔 아버지가 너무 고생하셨어요. 매일 새벽 6시에 나가셔서 밤 8시 전후해서 집에 돌아오셨고. 입고 나간 청바지는 해질 대로 해졌죠.
그 두꺼운 청바지를 뚫고 들어온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다리에 소독약을 바르는게 저녁 일과였습니다.
어릴 때 심정은 저리 힘든 일을 왜 하시나 싶었어요."


대학교를 다닐무렵 방학때면 아버지는 장남을 농장으로 불러내렸다.
일을 시키지도 않고 그저 곁에서 지켜보게 한 것이다.
정 회장은 당시 아버지의 다친 다리에 약 한번 발라드리지 못한 것이 두고 두고 후회가 된다고 한다.

1976년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고향에 돌아갈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대기업 해외주재원으로 근무하다 그만두고 무역업으로 제법 돈도 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는 선택의 기로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버지의 뒤를 잇기로 결심하는 데는 어머니 박정례 여사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께서 장남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야 된다시며 당신앞으로 된 농장의 지분을 제게 내놓으셨지요" 그 직후 사업을 접고 보성으로 내려왔다
'수남농장'으로 불리던 산림을 부친의 호를 따서 '윤제림(允濟林)'으로 이름부터 바꿨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고생해서 일군 산림을 빛을 내고, 고생한 대가를 후대에 남겨야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면적도 점차 키워 337ha가 되었다.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초암산과 주월산 정상까지 모두 '윤제림'으로 확대했다.
정 회장은 아버지에 이어 50여 년 조림한 공을 인정받아 2012년 동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아버지가 받은 상을 20년만에 그 아들이 받은 것이다.